북한 핵개발 역사 30년 총정리: 3대 김씨와 미국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세 번의 북핵 위기와 미국의 대응

핵심 요약

  • 배경: 북핵 문제는 냉전 종식 직후인 1990년대 초 시작되어 3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 현황: 세 명의 김씨 지도자를 거치며 북한의 핵능력은 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고도화되었다.
  • 전망: 미국의 정권 교체마다 대북정책이 흔들리는 ‘정책 진동’이 북한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왜 북한은 핵에 집착하는가

1994년 6월, 미국은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외과적 타격(surgical strike)’을 검토하고 있었다. 한반도는 제2의 한국전쟁 직전까지 갔다. 그때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담판을 지었고, 제네바 합의가 도출되었다.

30년이 지난 2024년, 북한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보유하고 있다. 핵탄두 수는 수십 기로 추정된다.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을까?

제1차 위기: 김일성 시대 (1990년대)

냉전 종식의 충격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북한의 세계는 무너졌다. 최대 후원국을 잃은 북한은 외교적 고립, 경제난,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라는 삼중고에 직면했다. 반면 남한은 공산권 국가들과 잇따라 수교하며 ‘북방외교’를 성공시켰다.

위기의식에 휩싸인 북한은 19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제1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었다.

클린턴의 양면 전략

빌 클린턴 행정부는 두 가지 트랙을 병행했다. 하나는 군사 옵션이었다. 영변 핵시설 폭격이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다른 하나는 외교였다. 카터의 방북과 김일성과의 담판이 전환점이 되었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가 체결되었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미국은 경수로 2기를 제공하며 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기로 했다.

무산된 합의

그러나 같은 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했다. 대북 유화책에 적대적인 의회가 구성되었고, 경수로 건설은 지연되었다. 김일성은 합의 직후 사망했고, 뒤를 이은 김정일은 체제 생존에 매달렸다.

제네바 합의는 이행되지 못한 채 표류했다.

제2차 위기: 김정일 시대 (2000년대)

“악의 축”

2001년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지목했다.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명확해진 것이다.

같은 해 10월, 미국은 북한이 비밀리에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제네바 합의는 완전히 파탄났다. 북한은 NPT를 다시 탈퇴하고,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감행했다.

6자회담의 시작과 좌절

위기가 고조되자 2003년 6자회담(미국·북한·한국·중국·일본·러시아)이 시작되었다. 2005년에는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의 체제 보장을 교환하는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합의는 곧바로 흔들렸다.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BDA 문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이 이어지며 6자회담은 2008년 이후 사실상 중단되었다.

제3차 위기: 김정은 시대 (2012년 이후)

핵능력의 고도화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은 ‘병진노선(경제-핵 병행 발전)’을 천명했다. 이후 핵실험 속도가 빨라졌다. 2017년에는 수소폭탄 실험과 ICBM ‘화성-15’ 발사에 성공했다.

북한의 핵능력은 이제 ‘협상 카드’를 넘어 ‘기정사실’이 되어가고 있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표방했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이기 전까지 본격 협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북한은 그 시간을 핵능력 고도화에 썼다.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에서 정상회담까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경고하며 군사적 긴장을 극대화했다. 그러다 2018년 극적으로 방향을 틀어 사상 최초의 미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싱가포르(2018), 하노이(2019), 판문점(2019) 세 차례의 만남이 있었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은 결렬되었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와 미국의 ‘일괄 타결’ 요구가 충돌했다. 실질적 진전은 없었다.

바이든: 우선순위에서 밀린 북핵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다루지 않았다. 미중 전략경쟁,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 긴급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 사이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하며 능력을 계속 키우고 있다.

State-building 관점의 분석

정치 리더십

미국 대통령의 교체가 대북정책의 급변을 낳았다. 클린턴의 협상 → 부시의 강경 → 오바마의 방치 → 트럼프의 급선회 → 바이든의 후순위화. 이 ‘정책 진동’이 북한에게 ‘버티면 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관료 기구

국무부와 국방부, 정보기관 간 입장 차이가 컸다. 의회의 역할도 중요했다. 1994년 공화당의 의회 장악은 제네바 합의 이행을 방해했다.

사회 세력

한국과 미국의 여론은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부상하는 것은 동맹의 확장억제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다.

외국

북한은 중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다. 북한은 나름의 전략적 계산에 따라 움직인다. 중국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3가지 시나리오

시나리오 1: 동결-관리

완전한 비핵화는 포기하고, 추가 핵·미사일 개발을 동결하는 선에서 타협한다. 현실적이지만 ‘핵보유국 북한’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시나리오 2: 장기 교착

협상 없이 제재와 억지가 지속된다. 북한의 핵능력은 계속 고도화되고, 한반도는 ‘불안정한 평화’를 유지한다.

시나리오 3: 위기 고조

우발적 충돌이나 오판으로 군사적 긴장이 극대화된다. 미국의 선제타격 또는 북한의 도발적 행동이 촉발점이 될 수 있다.

결론: 과거가 주는 교훈

연표:

1993.03 - 북한, NPT 탈퇴 선언 (제1차 위기)
1994.10 - 제네바 합의
2002.01 - 부시, '악의 축' 발언
2006.10 - 북한, 제1차 핵실험
2017.09 - 북한, 수소폭탄 실험
2018.06 -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2019.02 - 하노이 회담 결렬

30년간의 북핵 역사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일관성의 부재가 문제다. 미국의 정책 진동은 북한에게 ‘버티면 된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2. 북한의 핵 집착은 깊다. 체제 생존의 보험으로 여기는 핵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3. 시간은 북한 편이었다. 협상이 지연될수록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었다.
  4. 의회와 여론이 중요하다. 행정부의 합의도 의회의 지지 없이는 지속되지 못한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핵무장한 북한’을 용인할 수 있을까? 강압적 수단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이 두 질문 사이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참고문헌:

  • 장세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분석과 전망” INSS 전략보고 (2022)
  • Leon V. Sigal, Disarming Strangers: Nuclear Diplomacy with North Korea (1998)
  • Victor Cha, The Impossible State: North Korea, Past and Future (2012)
  • 전봉근, “북핵 협상 30년: 실패의 교훈”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슈브리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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