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다카이치 시대: 한일관계는 다시 얼어붙을 것인가
핵심 요약
- 배경: 2025년 한일 양국 모두 새 지도자가 취임하며, 한일관계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 쟁점: 역사 문제에 강경한 양측 지도자가 실용 외교로 선회할 수 있을지 주목
- 전망: 초기 우려와 달리, 양측 모두 전략적 평화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지도자, 익숙한 갈등 구조
2025년,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새로운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6월에 취임했고, 일본에서는 10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가 새 총리로 선출됐다.
두 지도자 모두 취임 전까지 역사 문제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보다 더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보여왔고,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신조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과연 한일관계는 다시 ‘최악의 해’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한일관계 70년: 패턴의 반복
협력의 시대 (1965-1998)
한일 양국은 1965년 기본조약 체결 이후 공통의 전략적,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협력해왔다. 냉전 시기 반공이라는 공동 목표, 그리고 경제 발전의 필요성이 양국을 묶어주었다.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다나카 가쿠에이로 이어지는 일본 지도자들 사이에는 강한 개인적 유대가 있었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이 관계는 양국 협력의 토대가 되었다.
역사의 귀환 (1980년대 이후)
그러나 1980년대 일본 교과서 파동, 1990년대 위안부 문제의 부각으로 역사가 양국 관계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한국의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역사 문제는 더 이상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이러한 갈등을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양국은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정권 교체와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2015년 이후: 롤러코스터 10년
위안부 합의와 그 파장 (2015-2017)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발표했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10억 엔 출연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 합의는 사실상 폐기됐다. 문 대통령은 “그 합의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선언했고, 한일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2019년: ‘Annus Horribilis’
2019년은 한일관계의 ‘최악의 해'(Annus Horribilis)였다.
주요 사건:
- 2018년 10-11월: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 2019년 1월: 일본 초계기-한국 해군 함정 갈등
-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규제 및 화이트리스트 제외
- 2019년 8월: 한국의 지소미아(GSOMIA) 종료 결정 (이후 유예)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고, 양국 국민 감정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윤석열-기시다의 급반전 (2022-2024)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는 극적으로 반전됐다. 기시다 총리와 윤 대통령은 셔틀 외교를 복원했고, 2023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러나 이 ‘봄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통일교 스캔들과 세금 인상 논란으로 2024년 10월 퇴임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계엄령 시도 실패 후 탄핵됐다.
이재명-다카이치 시대의 변수
우려되는 점
이재명 대통령:
- 문재인 정부보다 더 강한 민족주의적 수사
- 진보 진영의 역사 문제 강경론 압력
- 내부 정치적 어려움을 외교로 돌파할 유혹
다카이치 총리:
- 아베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야스쿠니 참배 지지
- 역사 수정주의적 발언 이력
- 한국, 중국에 대한 강경 외교 성향
희망적인 신호
그러나 취임 후 양측 모두 예상보다 실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대외정책에서 예상보다 실용주의적 접근을 취하고 있다. 선거 캠페인 때의 강경한 수사와 달리, 집권 후에는 한일관계의 급격한 악화를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총리 취임 후 역사 문제에 대한 발언 수위를 낮추고 있다. 지난주 열린 첫 한일 정상회담도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State-building 관점의 분석
국내정치가 외교를 결정한다
한일관계의 역사는 양국 국내정치가 외교를 얼마나 강력하게 규정하는지 보여준다.
정치 리더십: 양국 지도자의 이념적 성향과 정치적 기반이 대일/대한 정책을 결정한다. 보수-진보 진영 간 정권 교체는 곧바로 한일관계의 변화로 이어진다.
국내 여론: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그리고 최근 일본에서 여론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지도자들은 국내 지지 기반을 고려하지 않고 외교 정책을 결정하기 어렵다.
역사 문제의 특수성: 위안부, 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는 일반적인 외교 현안과 달리 ‘타협’이 어렵다. 피해자의 존엄과 국가 정체성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략적 환경의 압력
동시에 양국은 전략적 환경의 압력을 받고 있다.
-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 미중 전략 경쟁의 심화
-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 강화 요구
이러한 요인들은 양국 지도자에게 갈등보다 협력의 유인을 제공한다.
3가지 시나리오
시나리오 1: 전략적 평화
양측이 역사 문제를 ‘관리’하면서 안보·경제 협력에 집중한다.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조건: 미국의 중재, 북한 위협 지속, 양측 국내정치 안정
시나리오 2: 점진적 악화
역사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재발하며 관계가 서서히 냉각된다.
조건: 일본 법원의 자산 매각, 야스쿠니 참배, 국내정치적 필요에 의한 민족주의 동원
시나리오 3: 급격한 충돌
2019년과 같은 전면적 갈등이 재현된다.
조건: 예상치 못한 사건(군사적 충돌, 대법원 판결 등)과 양측 강경 대응
결론: 불확실성 속의 기회
이재명-다카이치 시대 한일관계의 미래는 아직 열려 있다.
분명한 것은, 한일관계가 더 이상 지도자 개인의 관계나 정부 간 합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국 시민사회, 여론, 그리고 역사의 무게가 모든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양측 지도자가 모두 ‘강경파’로 분류되기 때문에 오히려 실용적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듯이, 때로는 강경파가 유연한 외교를 펼칠 수 있는 정치적 자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의 다음 장이 어떻게 쓰여질지, 우리 모두 주목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