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가을, 좌익 봉기와 이승만의 선택
개요
1946년 9월 23일, 부산에서 8,000명의 철도 노동자가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단순한 노동 쟁의로 시작된 이 파업은 불과 두 달 만에 전국을 휩쓴 좌익 봉기로 확대되었고, 200명이 넘는 경찰이 목숨을 잃었으며, 1,000명 가까운 민간인이 사망했습니다. 미군정은 한때 남한 인구의 4분의 3이 공산주의자들의 통제 아래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 사건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 발생한 첫 번째 대규모 국가건설(State-building) 위기였습니다. 약한 국가 기구, 강력한 사회 세력,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의 경쟁 속에서 신생 남한은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했을까요? 그리고 왜 이승만이 이 과정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요?
역사적 배경
해방과 미군정의 딜레마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 한반도 남쪽은 미군의 점령지가 되었습니다. 9월 9일 서울에 들어온 미 24군단 사령관 존 하지(John R. Hodge) 중장은 남한의 군정과 행정을 인수했지만,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인력 부족: 1946년 10월 기준, 미군정 인력은 겨우 3,721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중 미국인은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한국인 직원을 합쳐도 11,400명에 불과했는데, 이는 일제 총독부 직원(16만 명)의 3분의 1도 안 되는 숫자였습니다.
정당성 부재: 미군정은 중경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서울의 조선인민공화국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결국 미군정이 선택한 것은 친일 관료의 재고용이었습니다.
1945년 9월, 미군정은 일제하 조선인 경찰을 모두 복직시켰습니다. 1946년 말까지 전체 경찰의 82%가 식민지 시절 경찰 출신으로 채워졌습니다. 도지사급 이상 고위 관료의 65%도 일제하 관리 경력자였습니다. 효율성을 택한 대가는 정당성의 상실이었습니다.
좌익 세력의 부상
해방 직후, 전국 각지에서 인민위원회(人民委員會)가 조직되었습니다. 이들은 일제가 남긴 행정 공백을 메우며 사실상의 지방정부 역할을 했습니다. 1945년 11월까지 남한의 12개 도시와 131개 군에 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고, 미군정 스스로 “남한에서 가장 강력하고 활동적인 조직”이라고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더욱이 노동자와 농민의 조직화도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 전국노동조합평의회: 1946년 8월까지 57만 명 가입 (광산, 철도, 건설, 화학 등)
- 전국농민조합총연맹: 남북한 합쳐 300만 명 (소작료 인하와 토지 재분배 요구)
미군정은 친일 관료에 의존하고, 좌익은 민중을 조직했습니다.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전개 과정
9월: 파업의 시작
1946년 9월 23일, 부산 철도 노동자 8,000명이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전국노동조합평의회가 주도한 이 파업은 곧 철도, 전기, 통신 등 주요 기간산업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명확했습니다: “미군정은 물러나고, 인민위원회에 행정권을 이양하라.”
미군정은 9월 30일부터 서울과 인천에서 강경 진압에 나섰습니다. 파업 주동자들을 체포하고, 군사력을 동원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불길은 오히려 남쪽으로 번져갔습니다.
10월: 경상도의 폭발
10월 초, 대구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경북도청 소재지인 대구에서 40명에 가까운 경찰이 살해되고, 도지사의 집이 습격당했습니다. 대구 주변 군에서도 군수와 경찰서장이 납치되거나 살해되었습니다. 미군정의 통제력은 경북 지역에서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경남 부산과 주변 도시에서도 공무원과 경찰이 공격받았습니다.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11월: 전라도로 확산
11월 초, 봉기는 전라도로 옮겨갔습니다. 전남에서만 65,000명이 무장 봉기에 가담했다고 미군정은 추산했습니다. 전주에서는 400명 이상의 죄수가 탈옥했습니다.
최종 피해 (1946년 9-11월):
- 경찰 사망: 200명 이상
- 민간인 사망: 1,000명 가까이
- 체포자: 16,000명 이상
진압: 강압과 회유의 결합
미군정은 두 가지 전략을 동시에 사용했습니다.
강압 (Hawk):
경찰 병력 동원 및 계엄령 선포
우익 청년단체와의 협력
– 한민청(韓民靑, 1946년 4월 창설, 이승만 후원)
– 서북청년단(1946년 8월 창설, 월남민 중심)
– 민족청년단(1946년 10월 창설, 이범석, 미군정 지원)
가혹한 고문과 심문
수천 명의 우익 청년들이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여 경찰을 도왔습니다. 그들의 폭력성은 경찰보다 더 무자비했고, 좌익들은 경찰보다 청년단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회유 (Dove):
쌀 밀수와 부패 공무원 처벌 강화 (벌금 50배 인상)
노동시간 제한 (주 48시간 + 초과근무 12시간)
소작료 인하 검토
미군정의 초대 군정장관 아치볼드 아놀드(Archibald V. Arnold) 소장은 “이 반란이 미국의 남한 계획을 크게 후퇴시킬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10월 중순에는 남한 최초의 민주 선거인 입법의원 선거마저 연기될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결국 강압과 회유를 결합하여 11월 말까지 봉기를 진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State-building 관점의 분석
1946년 가을 좌익 봉기를 State-building의 4대 행위자 관점에서 분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정치 리더십: 이승만의 부상
1946년 가을 이전까지 남한 정치의 주도권은 김규식에게 있었습니다. 미국 유학파 독립운동가인 김규식은 미군정과 워싱턴이 가장 선호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기독교인이며, 좌우합작에 유연한 그는 미군정으로부터 300만 원의 자금 지원과 비밀 회의 장소까지 제공받았습니다.
그러나 좌익 봉기에 대한 김규식의 대응은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는 여운형과 함께 미군정에 “친일 경찰 숙청”과 “입법의원 선거 취소”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10월 26일 공동성명으로 “국민이 단결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호소를 했을 뿐입니다.
반면 이승만은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 9월 중순: 남부 지방 순회 연설 (대구, 부산 등)
- 10월: 미군정에 자신의 중재안 제시
- 11월: 봉기 진압 후 정치적 입지 강화
- 12월: 미국 방문을 통해 워싱턴의 지지 확보
아놀드 장군은 이전까지 이승만을 “완전히 이기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지만, 봉기 이후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이승만의 반공 노선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2. 관료 기구: 약한 국가
미군정의 관료 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취약했습니다.
양적 부족:
- 미군정 인력: 3,721명 (미국인 절반 미만)
- 지방 주둔 미군: 각 도당 70-400명
- 경북의 한 중대는 12개 군을 담당
질적 문제:
- 82% 친일 경찰 → 정당성 결여
- 한국어 못하는 미군 장교
- 지방 행정 경험 전무
결국 국가 기구만으로는 좌익 봉기를 진압할 수 없었습니다. 미군정은 사회 세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사회 세력: 좌익 vs. 우익
좌익 세력의 강점:
- 인민위원회: 사실상의 지방정부 (131개 군)
- 노조: 57만 명
- 농민조합: 300만 명
- 조직력과 동원력
우익 세력의 등장:
- 한민청 (1946.4): 서울 깡패 조직, 이승만 후원, 경찰과 협력
- 서북청년단 (1946.8): 월남민 2-30대, 극렬 반공, 이승만 측근이 지도자
- 민족청년단 (1946.10): 이범석 주도, 미군정이 500만 원 지원
우익 청년단은 2,000-3,000명 규모로 총과 수류탄을 들고 좌익을 공격했습니다. 경찰보다 더 잔혹했고, 납치, 고문, 살인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들을 묵인하고 지원했습니다. 국가가 약할 때, 사회 세력이 국가를 만듭니다.
4. 외국: 미국의 딜레마
미군정은 다음과 같은 딜레마에 직면했습니다:
- 정당성 vs. 효율성: 친일파 재고용
- 민주주의 vs. 안정: 강경 진압 vs. 선거 실시
- 좌우합작 vs. 반공: 김규식 vs. 이승만
결국 미국은 반공 안정을 선택했습니다. 1946년 11월 이후, 미국은 좌우합작보다 이승만 중심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현대적 함의
1. 국가건설은 폭력을 동반한다
남한의 국가건설은 평화적이지 않았습니다. 200명의 경찰, 1,000명의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16,000명이 체포되었습니다. 우익 청년단의 폭력은 국가 폭력보다 더 무자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당연시하지만, 그 기반은 1946년 가을의 피로 만들어졌습니다.
2. 사회 세력이 국가를 만든다
1946년 남한 국가 기구는 너무 약했습니다. 미군정은 우익 청년단 없이는 좌익 봉기를 진압할 수 없었습니다. 서북청년단, 한민청, 민족청년단이 없었다면 남한의 국가건설은 실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사회 세력은 나중에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48년 여수순천 반란 진압 과정에서도, 1950년대 이승만 독재 유지에서도 이들은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3. 정치 리더십의 중요성
김규식은 미국이 선호했지만, 위기에 무능했습니다. 김구는 명망은 높았지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은 미국이 불신했지만, 적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승만이 남한의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1946년 가을의 선택 때문이었습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정치 지도자는 위기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4. 정당성 없는 효율성의 대가
미군정은 친일 경찰을 재고용함으로써 단기적 효율성을 얻었지만, 장기적 정당성을 잃었습니다. 이 딜레마는 오늘날에도 반복됩니다.
- 2000년대 이라크: 후세인 정권 관료 전면 해임 → 행정 마비 → 국가건설 실패
- 1990년대 동유럽: 공산당 관료 활용 → 효율성 확보 → 정당성 논란
정당성과 효율성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 1946년 남한은 효율성을 택했고, 그 결과는 복잡합니다.
연표
“`
1945.08.15 일본 항복, 해방
1945.09.09 미 24군단 서울 도착, 미군정 시작
1945.09.12 인민위원회 설립 시작 (11월까지 131개 군)
1946.04 한민청 창설 (이승만 후원)
1946.08 서북청년단 창설 (월남민 중심)
1946.09.23 부산 철도 노동자 파업 시작
1946.09.30 미군정, 서울·인천 파업 진압 시작
1946.10.01 대구 폭동 발생 (경찰 40명 살해)
1946.10.09 민족청년단 창설 (이범석, 미군정 500만 원 지원)
1946.11.01 전라도 봉기 (전남 6.5만 명 참여)
1946.11.30 봉기 진압 완료
1946.12 이승만, 미국 방문으로 지지 확보
“`
💡 수업 활용 TIP
토론 주제: “국가건설에서 정당성과 효율성 중 무엇이 우선인가?”
– 찬성: 단기적 안정을 위해 효율성이 중요 (친일 경찰 활용 불가피)
– 반대: 장기적 정당성 없이는 국가건설 불가능 (친일 청산 우선)
비교 분석: 1946년 남한 vs. 1954년 남베트남
– 공통점: 약한 국가, 강한 사회 세력, 외국(미국) 개입
– 차이점: 남한은 성공, 남베트남은 실패. 왜?
1차 사료 활용: 아놀드 장군의 평가
– “김규식: 유능하지만 우유부단”
– “이승만: 강력하지만 이기적”
→ 리더십의 조건은 무엇인가?
현대 연결: 2000년대 이라크 vs. 1990년대 동유럽
– 구정권 관료 해임 vs. 활용
– 결과의 차이는?
📚 추천 자료
학술서
- Cumings, Bruce. 1981.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1. Princeton University Press.
- 이정식. 2012. 『대한민국의 기원』. 일조각.
대중서
- 서중석. 2007. 『한국현대사 60년』. 역사비평사.
- 정병준. 2005. 『우남 이승만 연구』. 역사비평사.
사료
- USMG (미군정청). 1946. Summation of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Activities in Korea.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현대사 자료총서』.
한국의 국가건설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