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일 갈등: 왜 최악의 해였나
그해 여름, 편의점에서 사라진 것들
2019년 여름, 한국의 편의점과 마트에서 일본 맥주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니클로 매장 앞에는 “NO JAPAN” 피켓을 든 시민들이 서 있었다. SNS에는 일본 여행을 취소했다는 인증샷이 넘쳐났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9년은 한일관계의 ‘Annus Horribilis'(최악의 해)였다. 해방 이후 최악이라 불릴 만큼, 그해 양국 관계는 전례 없는 수준으로 악화됐다. 대법원 판결, 수출 규제, 지소미아 종료 통보—연쇄적인 충돌이 이어졌다.
이 글을 읽고 나면, 2019년 한일 갈등의 전개 과정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화선: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2018년 10월의 판결
2019년 갈등의 씨앗은 사실 2018년에 뿌려졌다.
2018년 10월 30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신일철주금, 현 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피해자 4명에게 각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었다.
한국 사법부의 입장은 명확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된 것은 아니다.”
일본의 반발
일본 정부는 즉각 반발했다.
“1965년 협정으로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 이번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양국 정부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2019년 상반기: 갈등의 확산
초계기 논란 (2018년 12월 – 2019년 1월)
대법원 판결 직후,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2018년 12월 20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한국 해군 광개토대왕함에 근접 비행했다. 일본은 “한국 군함이 사격 통제 레이더를 조사했다”고 주장했고, 한국은 “일본 초계기가 위협 비행을 했다”고 반박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이 사건은 양국 국민 감정을 자극했다. 군사 당국 간 신뢰마저 흔들렸다.
화해재단 해산 (2019년 1월)
2019년 1월, 문재인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을 공식 해산했다.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은 사용되지 않은 채 남았다. 일본 측은 “합의 파기”라며 격앙됐다.
그해 여름: 경제 전쟁의 시작
7월 4일, 수출 규제 발동
2019년 7월 4일, 일본 정부는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안보상 우려”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보복임이 분명했다.
8월, 화이트리스트 제외
8월 2일, 일본 정부는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한국은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최초로 탈락한 나라가 됐다.
이 조치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한국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아니다”라는 일본의 메시지였다.
불매운동의 확산
한국 시민들의 대응은 빨랐다. 자발적인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불매운동의 규모:
- 일본 맥주 수입: 전년 대비 97% 감소 (2019년 9월)
- 유니클로 매출: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
- 일본 여행객: 전년 대비 65% 감소 (2019년 8월)
“NO JAPAN, YES BOYCOTT” 구호가 거리를 뒤덮었다. SNS에서는 일본 여행, 일본 제품 구매를 ‘매국’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마저 형성됐다.
가을, 안보 협력의 위기
지소미아 종료 통보
2019년 8월 22일, 문재인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의 종료를 결정했다.
지소미아는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체결된 한일 간 군사 정보 공유 협정이었다. 북한 미사일 정보 등을 실시간 공유하는 안보 협력의 상징이었다.
한국 정부의 논리는 이랬다. “신뢰할 수 없는 국가와 군사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
미국의 개입
미국은 당황했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핵심 축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한국의 결정에 실망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미국의 압박 속에, 한국 정부는 11월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조건부 유예’했다.
갈등은 봉합됐지만, 상처는 남았다.
왜 이렇게까지 악화됐을까
1. 역사 문제의 ‘사법화’
과거 역사 문제는 정부 간 외교로 ‘관리’됐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로 사법부가 전면에 나서면서, 정부의 외교적 여지가 사라졌다.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 원칙상 사법부 판결에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그래도 국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맞섰다.
2. 국내정치의 압력
양국 모두 국내정치적 압력에 시달렸다.
한국: 진보 진영의 역사 문제 강경론, 시민사회의 반일 감정
일본: 아베 정권의 강경 외교 노선, 우익 여론의 혐한 감정
지도자들은 ‘약해 보이면’ 국내에서 비판받을 것을 우려했다.
3. 신뢰의 붕괴
2015년 위안부 합의, 2018년 대법원 판결, 화해재단 해산—일련의 사건들은 일본 측에 “한국과는 약속해도 소용없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한국 측에서는 “일본은 진정한 사과 없이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불신이 깊어졌다.
양국 사이의 전략적 신뢰가 무너진 것이다.
그 후: 무엇이 달라졌나
단기적 영향
- 양국 경제 교류 위축
- 관광, 문화 교류 급감
- 민간 차원의 반감 증폭
장기적 영향
- 한일관계의 ‘취약성’ 노출
- 역사 문제와 경제/안보의 연계 가능성 확인
- 미국의 중재 역할 한계
관계 회복의 시도
2022년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하며 관계 개선에 나섰다. 그러나 2019년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 나면…
- 2019년 한일 갈등의 전개 과정을 시간순으로 이해할 수 있다
- 갈등이 그토록 악화된 구조적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 역사 문제와 경제/안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 수 있다
2019년은 한일관계의 ‘바닥’을 보여준 해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바닥을 경험했기에 양국은 관계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됐다.
문제는 ‘바닥’이 한 번으로 끝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외교부, 「2019년 한일관계 주요 일지」
- 日本外務省, 「日韓関係」
- Ko, Yongjun. “Domestic Political Dynamics and Bilateral Relationship between Republic of Korea and Japan.” University of Delaware,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