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70년: 갈등과 협력의 역사
개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60년, 양국 관계는 협력과 갈등의 순환을 반복해왔다. 냉전 시기의 전략적 협력, 민주화 이후의 역사 갈등, 그리고 21세기의 롤러코스터까지—한일관계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축소판이다.
이 글에서는 한일관계 70년의 역사를 시기별로 정리하고, 양국 관계를 움직인 핵심 요인을 State-building 관점에서 분석한다.
역사적 배경: 왜 1965년이었나
식민 지배의 유산
1945년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공식적인 외교 관계가 없었다. 이승만 정부(1948-1960)와 요시다 시게루 내각(1948-1954) 시기, 양국은 상호 적대감 속에 있었다.
- 한국: 식민 지배의 기억이 생생했고, 일본에 대한 보상 요구가 강했다
- 일본: 한국을 ‘미개한 나라’로 보는 시선이 여전했고, 보상에 소극적이었다
양국 모두 미국에 안보와 경제를 의존하면서도, 직접적인 관계 정상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1965년 정상화의 배경
한일 국교 정상화는 공통의 전략적, 경제적 필요에서 비롯됐다.
한국 측 요인:
-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자금 필요
- 반공 동맹 강화
- 미국의 압력
일본 측 요인:
- 아시아 시장 확대
- 반공 전선 구축
-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 강화 요구
1965년 6월, 양국은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했다. 일본은 8억 달러(무상 3억, 유상 2억, 민간 차관 3억)를 제공하고, 한국은 대일 청구권을 포기했다.
협력의 시대: 1965-1979
개인적 유대의 시대
박정희 대통령과 일본 지도자들 사이에는 강한 개인적 유대가 있었다.
주요 인물 관계:
- 박정희 – 기시 노부스케(1957-60): 만주국 시절부터의 인연
- 박정희 – 사토 에이사쿠(1964-72): 기시의 동생, 한일조약 체결
- 박정희 – 다나카 가쿠에이(1972-74): 경제 협력 강화
이 시기 한일관계의 특징은 정상 간 직접 소통이었다. 역사 문제는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었고, 민간의 목소리는 제한적이었다.
전략적 협력의 토대
냉전 시기 양국은 반공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협력했다.
- 1950-53: 한국전쟁 (일본은 병참 기지 역할)
- 1965-73: 베트남전쟁 (한일 모두 미국 동맹으로 참전/지원)
- 1969: 닉슨 독트린 이후 한미일 안보 협력 강화
경제적으로도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한국의 산업화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역사의 귀환: 1980-1998
교과서 파동과 역사 문제의 부상
1982년, 일본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침략’을 ‘진출’로 수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과 중국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이것은 역사 문제가 한일관계의 핵심 의제로 부상한 첫 번째 계기였다.
민주화와 시민사회의 목소리
1987년 한국의 민주화 이후, 역사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졌다.
1990년대 주요 사건:
- 1991: 김학순 할머니의 위안부 증언
- 1992: 위안부 문제 유엔 인권위 제기
- 1993: 고노 담화 (일본 정부의 위안부 강제성 인정)
- 1995: 무라야마 담화 (식민 지배 사과)
이 시기부터 한일관계는 정부 간 관계만으로 정의될 수 없게 되었다. 피해자, 시민단체, 여론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1998)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
- 일본: 식민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 한국: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 지향적 관계 구축
- 양국: 문화 교류 확대, 경제 협력 강화
이 선언은 한일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후 정권 교체와 함께 그 정신은 점차 퇴색되었다.
롤러코스터: 2000년대 이후
고이즈미 시대의 갈등 (2001-2006)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일관계는 다시 냉각됐다.
- 노무현 정부: 대일 외교에서 역사 문제 강조
- 셔틀 외교 중단, 정상회담 공백
이명박-박근혜 시대 (2008-2017)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관계 개선 시도가 있었으나,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관계가 급랭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국내 비판에 직면했다.
문재인-아베 시대의 충돌 (2017-2022)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 2018: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 2019: 일본 수출 규제, 지소미아 갈등
- 양국 국민 감정 최악
윤석열-기시다의 화해 (2022-2024)
2022년 윤석열 정부는 강제징용 해법을 제시하며 관계 개선에 나섰다.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은 협력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2024년 양국 모두 정치적 격변을 겪으며, 관계의 미래는 다시 불투명해졌다.
State-building 관점의 분석
4대 행위자의 변화
정치 리더십:
- 1960-70년대: 개인적 유대에 기반한 정상 외교
- 1980년대 이후: 국내정치에 종속된 대외정책
관료 기구:
- 외교부의 역할 축소, 국내정치 논리 우선
사회 세력:
-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 피해자 단체, 여론의 영향력 증대
- 역사 문제의 ‘타협 불가능성’ 심화
외국 (미국):
- 한일 협력 촉구, 그러나 역사 문제 개입 한계
협력과 갈등의 구조
한일관계는 이중 구조 속에 있다.
협력의 요인:
-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 경제적 상호의존
- 미국의 동맹 네트워크
갈등의 요인:
-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
- 국내정치의 민족주의 동원
- 영토 분쟁 (독도/다케시마)
현대적 함의
역사는 반복되는가
한일관계 70년의 역사는 동일한 패턴의 반복을 보여준다.
1. 전략적 필요에 의한 협력 시도
2. 역사 문제로 인한 갈등 재발
3. 국내정치 변화에 따른 관계 급변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위해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 역사 문제의 분리 관리: 역사와 안보/경제 협력의 병행
- 시민사회 간 교류 확대: 정부 관계에 종속되지 않는 민간 협력
- 제도화된 협력 메커니즘: 정권 교체에 흔들리지 않는 협력 구조
한일관계의 다음 70년은 어떻게 쓰여질 것인가. 그것은 양국 시민과 지도자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 수업 활용 TIP
- 한일관계 연표를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보기
- 각 시기별 주요 인물의 입장을 역할극으로 재현
- “만약 당신이 외교관이라면?” 토론 수업
📚 추천 자료
- 박철희, 『한일관계의 역사와 현재』
- 기미야 다다시, 『한일관계사』
- 외교부 한일관계 자료집